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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역 성경 (연구용)

다3

고린도 전서—히브리어 성경을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인용하지 않은 부분에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는 구절들

고린도 전서 4:4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구절에 “주”(키리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주”라는 칭호는 문맥에 따라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문맥을 보면 바울은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판단하는 것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의 판단에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 전서 4:1-3)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느님을 자신의 종들을 살피시는 즉 판단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시편 26:2; 66:10; 139:23; 잠언 21:2; 예레미야 20:12) 따라서 바울은 당연히 자신을 판단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시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또한 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키리오스 앞에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많은 경우와 마찬가지로 키리오스가 정관사 없이 고유 명사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과 그리스어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사실은 이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이유가 됩니다.—부록 다1 참조.

뒷받침하는 자료:

  •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서한 핸드북」(A Handbook on Paul’s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폴 엘링워스, 하워드 A. 해턴, 1994년, 90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4:4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다시 한 번 아나크리노라는 동사가 사용되어 판단하시는으로 번역되었으며 여전히 판단하는 과정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판단의 주체가 하느님이다. 그리스어로는 앞에 정관사가 없으며 이 점을 볼 때 이 말은 ‘오직 주이신 분만이 나를 조사할 권리를 갖고 계십니다’라는 뜻인 것 같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한」(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존 패리 편, 1916년, 75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4:4에 나오는 키리오스(주)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유의할 만하게도, 성 바울은 LXX[칠십인역]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해 보이는 구약의 표현을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 또는 전치사 다음에 나오거나 무관사 실사 뒤에서 소유격으로 나오는 경우 외에는 무관사 κύριος[관사가 없이 사용된 키리오스]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외가 되는 경우는 이 구절과 로마서 14:6이다. 이 두 구절[로마서 14:6; 고린도 전서 4:4]에 나오는 κύριος[키리오스]가 단순히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면, 왜 관사가 생략되었는지 설명하기가 어렵다. 관사가 생략된 것은 판단하고 심판하시는 분의 권리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은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 즉 온전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라는 의미일 것이다.”

  • 「NIV 신앙생활 연구용 성경」(NIV Faithlife Study Bible, 2017년)에서는 고린도 전서 4:4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바울]는 자신의 양심을 근거로 자신의 충실성을 판단한 것이 아니라 그 판단을 하느님께 맡겼다.”

참고 문헌: J7, 8, 10, 17, 18, 23, 24, 28-33, 41, 65, 66, 93, 95, 100, 106, 115, 125, 138, 139, 146, 187, 310, 323, 324

고린도 전서 4:19 “여호와의 뜻이라면”

근거: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 나오는 표현을 직역하면 “주께서 뜻하신다면”이 되며, 그렇게 번역한 번역본들도 있습니다. 문맥을 볼 때 이 구절에 나오는 “주”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키리오스(주)가 사용된 경우도 있고 테오스(하느님)가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사도행전 18:21; 21:14; 고린도 전서 16:7; 히브리서 6:3; 야고보서 4:15) 이 구절에서 “뜻이라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와 “뜻”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명사는 「칠십인역」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는 히브리어 성경의 구절들을 번역할 때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은 이 부분에 테트라그람마톤을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들을 고려해 볼 때, 이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사도행전 18:21; 21:14; 야고보서 4:15 연구 노트 참조.

뒷받침하는 자료:

  • 「신약 주석 사전」(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1991년, 2권, 329-330면)에서는 키리오스가 “야훼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구절로 고린도 전서 4:19을 제시합니다.

  • 「앵커 예일 성경—고린도 전서: 서문과 주석이 들어 있는 새로운 번역본」(The Anchor Yale Bible​—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조지프 A. 피츠마이어, 2008년, 32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4:19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 표현에 나오는 키리오스는 부활되신 그리스도가 아니라 하느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 「문화적 배경과 함께 보는 NIV 연구용 성경」(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존 H. 월턴, 크레이그 S. 키너, 2016년)에서는 고린도 전서 4:19에 나오는 “주께서 뜻하신다면”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하느님께서 뜻하신다면 ···’과 같은 표현을 덧붙이는 경우가 있었다.”

참고 문헌: J7, 8, 10, 17, 22, 23, 28-32, 41, 65, 93, 94, 100, 101, 106, 115, 145-147, 163, 323, 324

고린도 전서 7:17 “여호와께서 주신 자신의 몫에 따라”

근거: 문맥을 볼 때 여기서 언급하고 있는 대상이 하느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신 ··· 몫”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메리조는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하느님을 주어로 하여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12:3에서 이 동사는 “주신” 또는 각주에 따르면 “나누어 주신”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고린도 후서 10:13에서는 이 동사가 포함된 표현이 “우리에게 재어 주신[메리조의 한 형태]” 또는 각주에 따르면 “우리에게 재어서 나누어 주신”으로 번역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자신의 종들에게 무엇인가를 나누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시라고 언급합니다. 전도서 5:18에도 비슷한 사상이 나옵니다. 이 구절의 문맥과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 그리고 그리스어 키리오스라는 표현이 쓰인 배경과 그 표현의 모호함(부록 다1 참조)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유의할 만한 점으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다른 언어로 옮긴 여러 번역판에서도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합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신약 주석 사전」(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1991년, 2권, 329-330면)에서는 키리오스가 “야훼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구절로 고린도 전서 7:17을 제시합니다.

  • 「앵커 예일 성경—고린도 전서: 서문과 주석이 들어 있는 새로운 번역본」(The Anchor Yale Bible​—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조지프 A. 피츠마이어, 2008년, 32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7:17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기서 호 키리오스[주]는 호 테오스[하느님]이다.”

참고 문헌: J28-32, 48, 65, 93, 94, 100, 101, 106, 115, 125, 144, 146, 167, 310

고린도 전서 10:9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여호와를 시험한 것처럼 그분을 시험하지 맙시다”

근거: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주”(톤 키리온)가 사용되었으며, 몇몇 사본들에는 “하느님”(톤 테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톤 크리스톤 즉 “그리스도”로 되어 있는 사본들도 있습니다.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과 몇몇 현대 성경 번역판들에도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이 구절의 원문에 “그리스도”가 사용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웨스트콧과 호트가 발행한 그리스어 본문(1881년)과 틴들하우스에서 발행한 그리스어 본문(케임브리지, 2017년)에서는 이 구절의 본문에 톤 키리온(“주”)을 사용합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을 생각해 볼 때,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 또는 “그리스도”라는 칭호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출애굽기 16:2, 3; 17:2, 3, 7과 민수기 14:22에 나오는 것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 하느님을 시험한 일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시험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엑페이라조)는 마태복음 4:7과 누가복음 4:12에서도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신명기 6:16을 인용하셨습니다. 신명기 6:16의 히브리어 본문은 이러합니다. “여러분이 맛사에서 여러분의 하느님 여호와를 시험한 것처럼, 그분을 시험해서는 안 됩니다.” 고린도 전서 10:9에서 “시험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칠십인역」의 신명기 6:16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습니다. 출애굽기 17:1-7에서는 맛사에서 있었던 일을 묘사하면서 모세가 백성에게 “왜 여호와를 계속 시험합니까?”라고 물었다고 알려 줍니다. 고린도 전서 10:9에서 바울은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한 것처럼 그분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들은 뱀에게 물려서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민수기 21:5, 6에 기록된 일을 언급한 것인데, 그 구절에서는 “백성은 계속 하느님과 모세를 대항하여 말했고” 그러자 “여호와께서 백성 가운데 독사를 보내셨다”고 알려 줍니다. 바울은 고린도 전서 10:9을 기록할 때 시편 78:18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는데, 그 구절에서 시편 필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대들었다[직역하면 “하느님을 시험했다”]”고 알려 줍니다. 이러한 성구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시험한” 대상이 하느님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줍니다. 따라서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은 이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알려 줍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앵커 예일 성경—고린도 전서: 서문과 주석이 들어 있는 새로운 번역본」(The Anchor Yale Bible​—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조지프 A. 피츠마이어, 2008년, 32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10:9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대부분의 오래된 주석서들에서는 이 구절의 본문에 키리온[주]이 사용되었으며 LXX[칠십인역]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키리온을 야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한다.”

  •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한」(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존 패리 편, 1916년, 147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10:9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성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를 시험했다’고 말한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 4절을 고려해 보더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를 시험했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 「성서 문헌지」(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1977년 3월호에 실린 조지 하워드의 “테트라그람마톤과 신약”이라는 기사에서는 고린도 전서 10:9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구절은 민수기 21:5, 6을 ··· 언급한 것인데,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에서는 Yhwh[야훼]가 백성 가운데 불뱀을 보냈다고 알려 준다. 쿰란에서 발견된 문서들을 분석해 보면, 여기서 바울이 한 말에는 원래 테트라그람마톤이 들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 표현은 처음에 θεόν[테온]과 κύριον[키리온]으로 대치되었다가 나중에 필사자들의 해석에 따라 Χριστόν[크리스톤]으로 대치되었을 것이다.”

  • 「성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한에 관한 비평 및 해석」(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of St Paul to the Corinthians, 아치볼드 로버트슨, 앨프리드 플러머, 1911년)에서는 고린도 전서 10:9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약에서 ὁ Κύριος[호 키리오스]는 일반적으로 ‘우리 주’를 의미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 구절의 경우에는 민수기 21:4-9과 시편 78:18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여호와를 의미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 「성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및 둘째 서한 해석」(The Interpretation of St. Paul’s First and Second Epistles to the Corinthians, R.C.H. 렌스키, 397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10:7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출애굽기 32:6의 LXX[칠십인역] 표현을 인용하는데, 그 구절에서는 간접적인 우상 숭배 즉 금송아지와 관련된 흥겨운 축제를 묘사한다. 그 금송아지는 백성이 여호와를 숭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지만 우상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그들이 행한, 우상 숭배 방식을 그대로 따른 축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고린도 사람들이 자유를 행사한다는 명목 아래 우상을 위한 축제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여호와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 이스라엘 백성이 나타낸 태도와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분명히 지적한다.” 렌스키는 9절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합니다. “주를 시험한다는 것은 그분이 허용하시는 한계에 다다르는 행동을 하는 것, 그렇게 하여 그분이 자신을 시험하는 자들을 처벌하심으로 자신이 하느님임을 나타내시는지 보려고 하는 것을 의미한다.”

참고 문헌: J7, 8, 10, 17, 18, 22, 23, 46, 65, 95, 96, 100, 101, 125, 138, 139, 145, 147, 167, 291, 295, 322-324

고린도 전서 10:21ㄱ “여호와의 잔”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주의 잔”으로 되어 있지만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타당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에 대해 경고합니다.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 잔을 염두에 두고 이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는데, 그는 다섯 구절 앞에서 이 잔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고린도 전서 10:16) 그 구절에서 그는 이 잔을 가리켜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이라고 부릅니다. 예수께서는 주의 만찬을 제정하실 때, 제자들에게 포도주 잔을 돌리기 전에 축복의 말씀 즉 기도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7, 28; 누가복음 22:19, 20) 예수께서 세우신 그러한 본에 따라, 새 계약 안에 있는 사람들은 “잔”에 대한 기도가 있은 뒤 그 잔을 마십니다. 하지만 예수의 대속 희생을 마련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의 희생의 가치를 여호와께 바치셨습니다. 그 희생이 어떻게 사용될지는 여호와의 뜻에 따라 결정되었으며, 새 계약에 대해 예언하고 그 계약을 제정하신 분도 여호와이셨습니다. (예레미야 31:31-34) 따라서 “여호와의 잔”과 “여호와의 식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음으로 키리오스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그에 더해 이어지는 구절인 고린도 전서 10:22에도 키리오스가 나오는데, 그 구절은 신명기 32:21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신명기 32:21의 문맥(신명기 32:19-21)을 보면 “그들이 신이 아닌 것으로 나를 격노하게[또는 “질투하게”, 각주] 했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리스어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탈무드와 헤브라이카에 근거한 신약 주해」(A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From the Talmud and Hebraica, 존 라이트풋, 1989년판, 4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10:21에서 “주의 잔”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된 “주의 식탁”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지존자의 식탁, 탈무드 신봉자들이 제단을 가리켜 흔히 사용하는 표현.”

참고 문헌: J7, 8, 10, 24, 32, 41, 65, 80, 94, 100, 115, 146, 255

고린도 전서 10:21ㄴ “여호와의 식탁”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주의 식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말라기 1:7을 인용한 것이거나 그 내용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여겨지는데, 그 구절에서는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희생 제단을 “여호와의 식탁”이라고 부릅니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들어 있습니다. 현존하는 「칠십인역」 사본들을 보면 말라기 1:7에 사용된 표현이 고린도 전서 10:21ㄴ에 나오는 표현과 비슷합니다. (고린도 전서 10:21 연구 노트 참조)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음으로 키리오스를 고유 명사처럼 사용한 것입니다.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 그리고 그리스어 정관사가 빠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고린도 전서 10:21ㄱ에 대한 설명 참조.

뒷받침하는 자료:

  •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한」(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존 패리 편, 1916년, 153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10:21에 나오는 “주의 식탁”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제단을 식탁으로 표현한 것은 주께서 손님을 초대한 주인이시라는 사상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 자주 언급되는 사상이다.”—고린도 전서 10:21ㄱ에 대한 설명 참조.

참고 문헌: J7, 8, 10, 24, 32, 41, 65, 80, 94, 100, 115, 146, 255

고린도 전서 10:22 “‘우리가 여호와를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근거: 문맥을 볼 때 여기서 키리오스가 가리키는 대상이 하느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우상 숭배에 참여하여 여호와께서 질투하시고 분노하시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점을 경고하면서 신명기 32:21을 그대로 인용하지는 않았지만 그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그 구절의 문맥을 살펴보면 (신명기 32:19-21) “그들이 신이 아닌 것으로 나를 격노하게[또는 “질투하게”, 각주] 했다”라고 말씀하신 분이 여호와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문맥과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은 이 구절의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해 줍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성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및 둘째 서한 해석」(The Interpretation of St. Paul’s First and Second Epistles to the Corinthians, R.C.H. 렌스키)에서는 고린도 전서 10:22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신명기 32:21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신명기 32:19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하느님의 이름이 나옵니다.

  • 「홀먼 신약 주석—고린도 전서와 후서」(Holman New Testament Commentary​—I & II Corinthians, 리처드 L. 프랫 2세, 2000년)에서는 고린도 전서 10:22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린도 사람들은 우상 숭배 행위를 멀리해야 했다. 모세의 인도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의 분노를 살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 「앵커 예일 성경—고린도 전서: 서문과 주석이 들어 있는 새로운 번역본」(The Anchor Yale Bible​—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조지프 A. 피츠마이어, 2008년, 32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10:22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 행위는 야훼의 분노를 샀다. 이어지는 바울의 말은 모세의 노래 중 신명기 32:21에 나오는 것과 같은, 그분의 분노를 묘사한 내용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신명기 32:21에서는 이렇게 알려 준다. ‘그들은 신이 아닌 것으로 (엡 우 테오) 나를 질투하게 하고 그들의 우상들로 나를 노엽게 했다.’”

참고 문헌: J7, 8, 10, 14, 32, 35, 41, 61, 65, 74, 80, 88, 94, 100, 115, 130, 145-147, 255, 273

고린도 전서 11:32 “여호와께 징계를 받는”

근거: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 하느님을 자신의 종들을 징계하시는 분으로 묘사합니다. (신명기 11:2) 예를 들어, 바울이 히브리서 12:5, 6에서 인용한 잠언 3:11, 12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배척하지 말고 ···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사람을 책망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이 인용한 이 성구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옵니다. 따라서 「신세계역」에서는 히브리서 12:5, 6의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히브리서 12:5, 6과 고린도 전서 11:32에 나오는 “징계”와 “징계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칠십인역」의 잠언 3:11, 12에 사용된 그리스어와 동일합니다. 따라서 징계를 받는 것에 관한 바울의 말은 모두 동일한 잠언의 사상을 언급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은 고린도 전서 11:32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해 줍니다.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많은 그리스어 사본들에서 이 구절을 보면 키리오스 앞에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최근에 발행된 그리스어 본문들에서는 정관사가 괄호 안에 들어 있거나 (네스틀레-알란트 그리스어 본문) 아예 본문에서 빠져 있습니다. (성서 문헌 학회 그리스어 본문 및 케임브리지 틴들하우스 그리스어 본문) 키리오스 앞에 정관사가 없다는 점을 볼 때 키리오스가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옥스퍼드 위클리프 홀의 전임 학장인 로버트 베이커 거들스톤은 자신의 저서 「구약의 동의어들」(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2판, 1897년)에서 신약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문제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어 「칠십인역」에 원래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본상의 증거가 발견되기 전에 기술된 내용입니다. “그[칠십인역] 역본에서 그 단어[여호와]를 보존했다면, 혹은 여호와아도나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다면, 틀림없이 신약에 나오는 대화와 논의 가운데 그런 용법이 그대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주는 시편 110편을 인용하실 때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아도니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셨을 것이다.” 이어서 거들스톤은 번역자가 신약의 어느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지 결정할 때 겪는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 학자가 그리스어 신약을 히브리어로 번역하는 일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그는 Κύριος[키리오스]라는 낱말이 나올 때마다 그 낱말이 히브리어로 실제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알려 주는 내용이 문맥에 있는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구약[의 그리스어 「칠십인역」 번역판]에서 여호와라는 명칭을 그대로 두는 것이 허용되었다면 어떤 언어로든 신약을 번역할 때 그런 어려움이 생길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은 여러 구절에서 지침이 될 것이다. 즉 ‘주의 천사’라는 표현이 나올 때면 우리는 주라는 낱말이 여호와를 가리키는 것임을 안다. 구약에 나오는 선례를 따른다면, ‘주의 말씀’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도 그와 비슷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또한 ‘만군의 주’라는 칭호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반면에 ‘나의 주’ 혹은 ‘우리 주’라는 표현이 나오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여호와라는 말은 쓸 수 없고 아도나이아도니를 사용해야 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많은 구절들의 경우 일정한 규칙에 따라 결정을 내리기가 어렵다.” 다음에 나오는 참고 문헌 목록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성경 번역자들은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일부 번역자들은 테트라그람마톤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글자를 사용했으며, Yahweh(야훼)나 YAHVAH(야바), YHWH를 사용한 번역자들도 있습니다.

참고 문헌: J16, 18, 32, 65, 94, 95, 100, 101, 115, 125, 145-147, 167, 201, 310, 323, 324

고린도 전서 14:2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근거: 바울은 방언을 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이사야 28:11, 12을 인용하는데, 그 구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알려 줍니다. 이사야의 그 구절에는 “그분은 ··· 말씀하실 것이다”라고 되어 있지만 바울은 “내가 ··· 말하겠다”라는 형식으로 인용합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태로 바꾼 것입니다. 바울은 그 내용을 인용한 다음, 이 말씀을 하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 “주께서 말씀하신다”로 되어 있는 표현을 덧붙입니다. 하지만 이 표현은 「칠십인역」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을 번역하는 데 매우 많이 사용된 표현입니다. 그러한 표현이 나오는 예를 이사야 1:11; 48:17; 49:18(로마서 14:11에서 인용됨); 52:4, 5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과의 이러한 연관성은 고린도 전서 14:21에 나오는 이 표현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키리오스 앞에 정관사가 없다는 점을 볼 때 키리오스가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신약 주석 사전」(Exeget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1991년, 2권, 329-330면)에서는 키리오스가 “야훼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사용된” 구절로 고린도 전서 14:21을 제시합니다.

  • 「앵커 예일 성경—고린도 전서: 서문과 주석이 들어 있는 새로운 번역본」(The Anchor Yale Bible​—First Corinthians: A New Translation with Introduction and Commentary, 조지프 A. 피츠마이어, 2008년, 32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14:21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바울은 이사야 28:11, 12ㄹ의 내용을 형식을 달리하여 인용하면서 이사야의 말도 포함시켰다.” 이 성경에서는 이사야의 그 구절의 배경에 대해 계속 이렇게 설명합니다. “따라서 에브라임과 유다의 백성은 야훼께서 아시리아어를 하는 침략자들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어쩔 수 없이 듣게 될 것이었다.”

  •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둘째 서한에 관한 비평 및 해석」(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Second Epistle to the Corinthians, 마거릿 E. 스롤, 2004년)에서는 고린도 후서 3:16, 17에 대한 설명 가운데서 κύριος[키리오스]가 “야훼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된” 구절로 고린도 전서 14:21을 제시합니다.

참고 문헌: J7, 8, 10-12, 14, 16-18, 22-24, 28-36, 38, 40-43, 46, 47, 52, 59-61, 65, 66, 88, 90, 93, 95, 96, 99-102, 104-106, 114, 115, 117, 125, 130, 136, 144-147, 149, 154, 164-166, 178, 187, 195, 201, 203, 209, 210, 217, 237-239, 244, 250, 265, 269, 271, 273, 275, 279, 283, 287, 290, 295-297, 310, 323, 324

고린도 전서 16:7 “여호와께서 허락하시면”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주”(키리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와 비슷한 표현들이 여러 차례 나오는데, 키리오스(주)가 사용된 경우도 있고 테오스(하느님)가 사용된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주”는 하느님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사도행전 18:21; 21:14; 고린도 전서 4:19; 히브리서 6:3; 야고보서 4:15) 또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본에서는 이 부분에 테트라그람마톤을 사용합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비슷한 표현들과 그 표현들의 히브리어 성경과의 연관성은 이 구절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사도행전 18:21; 21:14; 야고보서 4:15 연구 노트 참조.

뒷받침하는 자료:

  • 「해설자의 성서 주석」(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W. 해럴드 메어, 1976년, 10권)에서는 고린도 전서 16:7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자신의 인생을 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맡겼다는 점을 강조한다.”

  • 「문화적 배경과 함께 보는 NIV 연구용 성경」(NIV Cultural Backgrounds Study Bible, 존 H. 월턴, 크레이그 S. 키너, 2016년)에서는 고린도 전서 16:7에 나오는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표현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줍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할 때 ‘하느님께서 뜻하신다면’과 같은 표현을 덧붙이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 문헌: J7, 8, 10, 14, 16-18, 22, 23, 32, 65, 94, 95, 100, 101, 115, 125, 138, 145-147, 167, 310, 322-324

고린도 전서 16:10 “여호와의 일”

근거: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이 부분에 “주”(키리오스)가 사용되었습니다. 유의할 만한 점으로, 이 구절에 나오는 키리오스 앞에는 그리스어 정관사가 없습니다. 문법적으로 볼 때 정관사가 있어야 할 자리에 정관사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키리오스 앞에 정관사가 없다는 점을 볼 때 키리오스가 고유 명사처럼 사용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뒷받침하는 자료:

  • 「사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보낸 첫째 서한」(The First Epistle of Paul the Apostle to the Corinthians, 존 패리 편, 1916년, 248면)에서는 고린도 전서 16:10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관사 κύριος[관사가 없이 사용된 키리오스]는 전치사 다음에 나오거나 무관사 실사 뒤에서 소유격으로 나오는 경우에만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로마서 14:6) 따라서 여기에서는 τοῦ θεοῦ[하느님]를 가리킨다.” 이 책은 계속해서 로마서 14:20과 요한복음 6:28을 참조해 보도록 언급합니다. 그 구절들에서는 “하느님의 일”이라는 표현 가운데 이 구절 즉 고린도 전서 16:10에 나오는 “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르곤)와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점 역시 이 구절에 나오는 “주”가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킨다는 것을 뒷받침해 줍니다.

참고 문헌: J7, 8, 10, 14, 16-18, 24, 28-32, 65, 93-95, 100, 101, 106, 115, 146, 310, 323, 324